
자유는 허락받는 것이 아니다
- 불안과 결단을 넘어,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시민의 권리로 -
사단법인 해냄복지회 이사장
김재익 철학 석사
인간에게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는 것은 반드시 가난이나 질병만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 살아 있으면서도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현실이 때로는 더 깊은 고통이 된다. 어디에서 살 것인지, 누구와 함께할 것인지, 무엇을 하며 살아갈 것인지. 누구에게나 평범한 이 질문이 장애인에게는 오랫동안 허락과 승인을 받아야 하는 문제가 되어 왔다. 우리는 장애인을 보호한다고 말하면서 그의 선택을 대신했고, 안전을 보장한다면서 자유를 제한했으며, 복지를 제공한다면서 정작 그가 원하는 삶은 충분히 묻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은 단순히 보호받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 때로는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서면서 자기만의 인생을 만들어 가는 존재이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은 바로 이 당연한 인간의 권리를 되찾으려는 역사이다. 그것은 혼자 살아가는 기술을 배우는 일이 아니라, 타인이 결정하던 삶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주인으로 서는 과정이다. 동시에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할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사회에 묻는 일이기도 하다.
1. 불안에서 시작되는 자유의 물음
독일의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는 『존재와 시간』에서 인간을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묻고 이해할 수 있는 존재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단순히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안에서 자신이 누구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하이데거의 철학에서 중요한 개념 가운데 하나가 '불안'이다. 여기서 불안은 단순히 어떤 위험을 두려워하는 감정이 아니다. 익숙하게 받아들였던 삶의 방식이 낯설어지고, 자신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근본적으로 묻게 되는 경험이다. 오랫동안 시설에서 생활해 온 장애인이 어느 날 이렇게 묻는다고 생각해 보자. "나는 왜 내가 원하는 시간에 외출할 수 없는가?" "왜 어디에서 살 것인지를 다른 사람이 결정하는가?" "나는 평생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이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지금까지 당연하게 여겨졌던 생활의 질서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물론 새로운 삶은 두려울 수 있다. 시설을 벗어나면 어디에서 살아야 할지, 활동지원이 충분할지, 경제적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걱정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두려움 속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묻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하이데거의 철학을 자립생활에 적용한다면, 이 순간은 타인이 정해 놓은 삶에서 벗어나 자신의 존재 가능성을 발견하는 계기로 이해할 수 있다. 그다음에 필요한 것은 '결단'이다. 결단은 아무런 도움 없이 혼자 살겠다는 선언이 아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면서도 삶의 방향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태도이다. "나는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나 내 삶까지 다른 사람이 결정하게 하지는 않겠다." 이 짧은 문장에는 장애인 자립생활의 철학적 본질이 담겨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스스로 살아가겠다고 결단해도 집이 없고, 활동지원이 부족하며, 이동할 수 없는 사회라면 그 결단은 현실이 되기 어렵다. 개인의 결단은 자유의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유를 현실로 만드는 것은 사회의 책임이다.
2. 한국 자립생활운동, 보호의 대상에서 권리의 주체로
한국의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은 이러한 문제를 개인의 고민에 머물게 하지 않고 사회적 권리의 문제로 발전시켜 왔다. 1990년대 후반 미국과 일본의 자립생활운동이 국내에 소개되고, 2000년대 들어 장애인 당사자가 주도하는 자립생활센터들이 활동을 확대하기 시작했다. 이 운동이 가져온 변화는 단순히 새로운 복지서비스가 등장했다는 데 있지 않다. 그전까지 장애인복지에서는 치료와 재활, 보호와 돌봄이 중요한 중심축이었다. 그러나 자립생활운동은 질문 자체를 바꾸었다. "장애인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서 "장애인이 어떻게 자기 삶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할 것인가?"로 관점을 전환한 것이다. 장애인은 더 이상 전문가가 정해 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수동적인 대상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필요한 지원을 결정하고, 동료와 함께 문제를 해결하며, 지역사회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살아갈 권리를 요구했다. 이러한 변화는 제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2005년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시범사업이 실시되었고, 2007년 4월부터 장애인활동보조서비스가 전국적으로 시행되었다. 이어 2011년에는 「장애인활동지원에 관한 법률」에 근거한 장애인활동지원제도가 시행되었다. 이러한 제도의 발전에는 장애인 당사자들의 오랜 요구와 실천이 중요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특히 활동지원은 단순히 일상생활을 도와주는 서비스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활동지원인의 도움을 받아 출근하고, 친구를 만나고,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중증장애인은 도움을 받는다는 이유로 자립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다. 오히려 필요한 지원을 활용하면서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사람이다. 자립생활운동은 이처럼 도움과 독립을 서로 반대되는 개념으로 보는 오래된 생각을 바꾸었다. 그러나 제도가 생겼다고 해서 운동의 목표가 완성된 것은 아니다. 활동지원 시간이 부족하거나, 지역사회에 살 집이 없거나, 장애인에게 적합한 일자리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자유로운 삶은 여전히 제한된다. 또한 자립생활센터가 단순한 서비스 전달기관으로만 이해된다면, 장애인 당사자의 권익옹호와 동료상담, 사회환경을 바꾸는 운동의 의미는 약해질 수 있다. 따라서 한국 자립생활운동이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는 분명하다. 서비스를 얼마나 제공했는가보다 그 서비스를 통해 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얼마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되었는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3.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 자유를 국가의 책임으로 바꾸다
한국의 자립생활운동이 장애인의 자기결정권을 사회에 요구해 왔다면,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이러한 요구를 국제적인 인권의 원칙으로 명확하게 제시했다. 2006년 유엔에서 채택된 장애인권리협약은 우리나라에서 2009년 1월 10일 발효되었다. 그중 제19조인 '자립적 생활 및 지역사회에의 동참'은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조항이다. 제19조가 강조하는 내용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장애인은 다른 사람과 동등하게 자신이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살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특정한 생활방식을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 둘째, 지역사회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활동지원 등 다양한 지원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자유로운 삶을 선택했더라도 필요한 지원이 없다면 그 권리는 실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셋째, 지역사회의 일반적인 시설과 서비스가 장애인에게도 동등하게 이용 가능해야 한다. 학교와 직장, 교통수단과 문화시설에서 장애인이 배제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세 가지 원칙을 하나로 연결하면 중요한 결론에 도달한다. 자립생활은 장애인에게 혼자 살아갈 능력이 있음을 증명하라고 요구하는 제도가 아니라, 장애인이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가 필요한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는 권리의 원칙이다. 2017년 유엔장애인권리위원회가 발표한 제19조 일반논평 제5호는 이러한 의미를 더욱 분명하게 설명한다. 자립생활은 반드시 혼자 사는 것을 뜻하지 않으며, 일상생활의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니다. 핵심은 장애인이 자신의 생활방식과 일상에 관한 선택권과 통제권을 갖는 데 있다. 이것은 한국 장애인 자립생활정책을 평가하는 기준도 바꾸어 놓는다.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주택에 입주했다고 해서 자립생활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 집에서 자신의 생활시간과 인간관계를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지, 필요한 지원을 받으며 지역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는 우리에게 분명한 사실을 일깨운다. 장애인이 자립하지 못하는 이유를 개인의 신체적 조건이나 의지 부족에서만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립생활을 가로막는 제도적 장벽과 사회환경을 개선하는 것 역시 국가와 지역사회의 중요한 의무이다. 바로 여기에서 하이데거의 철학과 장애인 자립생활운동,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이 서로 만난다. 철학은 인간이 자기 삶의 주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자립생활운동은 그 주체성을 사회적 권리로 요구해 왔다. 그리고 유엔장애인권리협약은 그 권리를 보장할 국가의 책임을 명확히 한다. 이 연결은 단순한 이론적 설명이 아니다. 장애인의 자유를 개인의 용기에 맡겨 두지 않고 사회가 함께 실현해야 할 권리로 바꾸는 논리적 근거이다.
4. 이제는 장애인에게 결단을 요구하기보다 사회가 결단해야 한다
우리 사회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을 말하면서 여전히 당사자의 능력부터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이 사람이 혼자 생활할 수 있는가?" "이 사람이 일을 할 수 있는가?" "이 사람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가?" 물론 필요한 지원을 파악하기 위한 평가는 중요하다. 그러나 평가의 목적이 장애인의 가능성을 미리 제한하는 데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 질문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 "어떤 지원이 있다면 이 사람은 원하는 곳에서 살 수 있는가?" "어떤 환경이 마련된다면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가?" "어떤 정보와 의사소통 지원을 제공하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고 결정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이야말로 자립생활의 철학과 권리의 원칙에 부합한다. 앞으로의 자립생활정책은 주거지원과 활동지원, 이동권과 고용지원이 분리되지 않고 실제 생활 속에서 연결되도록 발전해야 한다. 중증장애인에게 지역사회 주거공간을 마련하더라도 충분한 활동지원이 없다면 지속적인 생활이 어렵다. 활동지원이 제공되더라도 이동할 수 없거나 노동의 기회가 차단된다면 사회참여는 제한된다. 또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과 정책 의지에 따라 자립생활의 기회가 크게 달라져서도 안 된다. 어느 지역에 살든 장애인이 필요한 지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국가가 기본적인 보장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 장애인 당사자가 정책의 결정과 평가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자립생활은 누군가가 장애인을 위해 대신 설계해 주는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자립생활정책의 성공을 단순한 서비스 이용자 수나 시설 퇴소자의 수로만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 사람이 원하는 곳에서 살고 있는가. 자신의 하루를 스스로 결정하는가. 일하고 배우며 지역사회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가. 무엇보다 자신의 삶에 만족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답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자립생활정책은 인간의 삶을 변화시키는 정책이 된다.
5. 자유는 시혜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에 속한 권리이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때로는 잘못된 선택을 하며, 때로는 실패한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불완전함이 인간의 존엄을 감소시키지는 않는다. 장애인도 마찬가지이다. 신체적 제약이 있다고 해서 삶의 가능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활동지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자유를 포기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의사소통에 지원이 필요하다고 해서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한국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의 역사는 이러한 당연한 진실을 사회에 일깨워 온 과정이었다. 누군가는 시설의 문 앞에서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요구했고, 누군가는 거리에서 이동의 자유를 외쳤으며, 누군가는 필요한 활동지원과 노동의 기회를 얻기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그 외침의 중심에는 언제나 하나의 질문이 있었다. "왜 장애인은 다른 사람처럼 자신의 삶을 선택할 수 없는가?" 하이데거의 철학으로 돌아가 보면, 인간은 주어진 현실 속에서도 자신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묻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제 장애인에게만 불안과 결단을 요구해서는 안 된다. 장애인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삶을 선택하기 위해 용기를 내고, 사회의 편견과 장벽에 맞서 왔다. 이제 결단해야 할 쪽은 장애인이 아니라 우리 사회이다. 장애인에게 얼마나 더 강한 의지와 용기가 필요한지를 물을 것이 아니라, 그가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가 무엇을 바꾸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활동지원과 주거, 이동과 노동, 교육과 문화에 이르는 모든 영역에서 장애인의 선택권이 실제로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자립생활은 특별히 용감한 장애인만이 얻을 수 있는 삶의 보상이 아니다. 그것은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누구도 배제되어서는 안 되는 인간의 보편적인 권리이다. 자유는 누군가가 허락할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에 속한 권리이다. 장애인의 자립생활운동은 그 자유를 현실의 삶으로 바꾸기 위한 역사였으며, 유엔장애인권리협약 제19조는 그 자유를 보장해야 할 국가의 책임을 밝히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자립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묻기 전에, 장애인의 자유를 보장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자립생활의 완성은 장애인이 세상에 적응하는 데 있지 않다. 장애인이 자신의 삶을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세상이 변화하는 데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