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UN CRPD의 근본 철학과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
GOOD JOB 자립생활센터 센터장
김재익 소장(철학석사)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 Convention on the Rights of Persons with Disabilities, 이하 UN CRPD)은 단순한 인권 조약을 넘어, 장애를 바라보는 전 세계적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어낸 역사적 이정표라 할 수 있다. 2006년 채택되어 2008년 발효된 이 협약은 "아무것도 우리에 대해 우리 없이 하지 말라"는 구호를 법제화하며, 장애인을 복지의 수혜자가 아닌 ‘완전한 권리의 주체’로 선언한 것이다.
1. 근본 철학: 인권 기반 접근과 사회적 모델
UN CRPD의 가장 핵심적인 철학은 ‘인권 기반 접근(human rights-based approach)’이다. 이는 장애를 더 이상 의료적 결함이나 개인의 불완전성으로 보지 않고, 사회가 만든 장벽과 차별 구조 속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사회적 모델(social model of disability)의 전환이다. 협약은 장애인을 보호하고 시혜를 베풀 대상이 아니라, 사회적 평등을 보장받아야 할 주체로 재정의한다. 이를 통해 교육, 고용, 정치, 사법, 건강 등 모든 영역에서의 완전하고 효과적인 참여(full and effective participation)를 당사국에 의무화한다. 예를 들어, 제12조는 법적 능력의 평등한 인정을, 제19조는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할 권리를 보장한다. 제9조는 모든 사람을 위한 접근성 확보를 기본권으로 선언한다. 또한 협약은 단지 차별을 금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당한 편의 제공(duty of reasonable accommodation)을 거부하는 것을 ‘차별’로 정의하며,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제도와 환경을 바꾸어야 한다고 요구한다.
2. 우리나라에 주는 시사점
우리나라는 2008년 이 협약을 비준하였지만, 여전히 협약의 철학이 법과 제도, 행정 관행에 깊이 뿌리내렸다고 보기는 사실 어렵다할 것이다. 첫째,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여전히 ‘도움이 필요한 존재’에 머무르고 있다. 자립생활이나 자기결정권을 지원하는 제도는 부족하고, 보호 중심의 시설이나 의료적 판단이 우선되는 구조가 남아 있다. 한국에서 전문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은 생각을 많이 해야 할 것이다. 둘째, 헌법과 주요 법령에서의 반영 미흡도 문제다. 독일처럼 헌법에 ‘장애로 인한 차별금지’를 명시하고 있지 않으며, 많은 법령이 장애인을 개별 정책 대상 또는 예외 규정으로 다루고 있다. 이는 UN CRPD의 ‘보편적 권리’라는 철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명확히 볼 수 있다. 셋째, 당사자의 참여 부족도 심각하다. 협약은 정책 결정과 이행 전 과정에 장애인의 참여를 보장하라고 명시하지만, 실제로는 전문가나 공무원이 중심이 되는 상향식 행정 구조가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우리 없이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CRPD의 기본 원칙에 어긋나는 구조이다.
3. 결론
UN CRPD는 단지 하나의 국제조약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장애를 ‘어떻게 인식하고 다룰 것인가’에 대한 철학적 선언이다. 우리나라는 협약의 정신을 헌법과 주요 법률에 반영하고, 보호에서 권리로, 배제에서 참여로, 시혜에서 정의로 나아가야 한다. 이것은 단지 장애인을 위한 변화가 아니다. 이는 모든 인간의 존엄을 재정의하고, 보다 정의롭고 포용적인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약속이 되어야 한다. 그 시작은 반드시 ‘장애인의 권리를 인권의 문제로 인정하는 것’이다.

